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포클랜드 전쟁 (문단 편집) === 아르헨티나의 반격 - 셰필드 쇼크 === [[파일:HMS_Sheffield_(D80).jpg |width=500]] ▲ 영국 [[구축함]] [[42형 구축함|HMS 셰필드(Sheffield) 함]] '''셰필드 쇼크'''로 알려진 5월 4일 아르헨티나 해군의 반격은 해전사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래를 알렸다. 아르헨티나군 해군 항공대 소속 [[쉬페르 에탕다르]] 공격기가 [[엑조세]] 미사일로 영국 해군의 [[42형 구축함]] HMS 셰필드를 격침시킨 것이다.[[https://www.youtube.com/watch?v=IUZu8bvxJs4|영상]][* 1분 38초에 명중 장면이 나온다.] 이날 아침 아르헨티나 본토에서 출격한 SP-2H 넵튠 해상초계기는 헤네랄 벨그라노의 생존자를 수색하는 척 하면서 영국 함대의 위치를 레이더로 탐지했다. 만약 시해리어가 덤벼든다면 죽을 게 확실한 임무였지만 넵튠 승무원들의 기만이 먹혀들어 영국 해군은 장장 세 시간 가까운 정찰비행 내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뒤이어 리오 그란데 기지에서 이륙한 쉬페르 에탕다르 두 기가 초계기의 유도에 따라 영국 함대의 남서쪽에서 저공으로 침투했다. 수평선 아래 숨어 표적에서 28해리 거리까지 접근한 쉬페르 에탕다르는 잠시 상승하여 레이더로 영국 함정의 위치를 파악한 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엑조세 두 발을 발사했다. 엑조세는 영국 기동부대 18~30마일 전방에 돌출돼 있던 세 척의 42형 구축함을 향해 고속으로 돌진했다. 이 중 쉬페르 에탕다르의 접근을 눈치챈 글래스고와 코벤트리는 채프를 살포하여 회피할 수 있었지만, 셰필드에게는 운이 따르지 않았다. 견시가 미사일 접근을 확인한 직후 엑조세 한 발이 셰필드의 전투정보실에 정확히 명중했고, 화재로 주요 기능을 상실한 셰필드는 네 시간 동안 불길과 사투를 벌인 끝에 버려지고 만다. 이 공격으로 함 총원 281명 중 20명이 [[전사]]하고, 26~63명이 부상했다. 다행히 함 내 탄약고에 유폭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어서 승조원들이 몰살되는 사태는 피했고 배도 한동안은 물 위에 떠 있었다. 부상자는 헬기를 이용하여 [[센토어급 항공모함|HMS 허미즈]]로 이송했고, [[21형 호위함]]인 HMS 애로우와 [[12형 호위함]] HMS 야머스가 달려와서 외부에서 화재를 진압하다가 배를 포기하는 명령이 떨어지자 생존자들을 옮겨태웠다. 이들은 징발된 민간 유조선인 MV 브리티시 에스크호에 탑승하여 [[어센션 섬]]으로 이송되었다. 또한 영국 해군은 이 과정을 좀 더 면밀하게 조사한 끝에... * 우연히도 [[함장]]과 대공전장교를 포함한 주요 승조원들이 CIC(전투정보실, 그러니까 지휘소)에 없었다. * 위성 통신 장비인 SCOT의 신호가 쉬페르 에탕다르에 탑재된 레이더와 유사한 탓에 위성 통신을 할 때마다 이를 레이더 시그널로 인식한 ESM 장비 UAA-1이 전투기 접근을 경고하는 오보가 끊이질 않았다. 5월 4일 하루에만 이런 가짜 경보가 3, 4번이나 울렸고 마침내 쉬페르 에탕다르가 실제로 접근했을 때에는 대공전 통제함 인빈시블이 동료함 글래스고의 경고를 통신 장치 사용에 따른 오보로 판정했다. * 하필 엑조세 공격이 가해진 순간 셰필드는 SCOT 위성통신장비를 가동중이라 UAA-1을 끄고 있었다. * 저공 비행하는 엑조세 2기를 레이더가 제대로 잡아내지 못했다. ...등의 보고를 내놓았다. 정말 안 좋은 상황들이 극적일 정도로 완벽하게 겹친 것이다. 그러나 영국 해군은 원인 규명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피격 순간의 상황을 완벽히 재구성해내지는 못했다. 작전실(Operations room, CIC의 영국 해군식 표현) 근무 요원들은 피격 당시 전멸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작전실의 근무 정위치를 이탈해 사관식당에서 수다나 떨던 대공전 장교는 살아남았고, 조사 결과 셰필드의 피격에 책임이 있다고 지목됐지만 승전 축하 분위기를 해쳐선 안된다는 정치적 이유로 군법회의 회부마저 피할 수 있었다. 이 때 셰필드를 격침시켰던 엑조세는 [[불발탄]]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2010년대 영국에서 최신 분석기법을 활용한 결과 탄두가 기폭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탄두 기폭으로 셰필드의 주요 기능이 마비된 이후 로켓 모터에 남은 연료에 불길이 옮겨붙으며 셰필드에 심각한 피해를 입힌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사일이 전투정보실에 직격하는 바람에 셰필드의 데미지 컨트롤이 실패하는 바람에 화재진압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셰필드는 후에 영국으로 예인 중에 피탄된 곳이 침수되어 6일 뒤인 5월 10일에 최종 침몰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아르헨티나는 셰필드의 침몰 사실을 영국 언론의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장거리 정찰이 가능한 기종들은 전쟁 초반부에 전부 쓰지도 못하는 꼴이 나 버렸고[* 사실 이 기종들도 노후화되어 정확도에 문제가 좀 있었다.], 장거리 레이더 또한 작동 불가 상황이라 믿을 건 실전에 투입되었던 조종사들의 증언이었는데, 이는 예로부터 신뢰도가 그다지 높지 못했다. 일단 불이 붙으면 격침이라는 식으로 잘못 알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쉬페르 에탕다르 조종사들은 발사 직후 방공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로 도주해서 피탄 결과를 정확히 알 방도가 없었다. 사실, 아르헨티나군이 포클랜드 전쟁 전체에 걸쳐 이렇게 부족한 면모를 많이 보였던 이유는 군대 조직 자체가 남미 패권 다툼을 위해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즉, 고속 장거리 전폭기도 없었고 재급유기도 단 2대였던 이유는 국경 지역에서 벌어지는 소규모 분쟁을 대비해 시스템을 구축해두었기 때문이었다. 아르헨티나가 보유하고 있던 쉬페르 에탕다르와 엑조세는 각각 5기와 5발뿐이었다.[* 게다가 엑조세와 쉬페르 에탕다르의 통합 작업을 하기 직전 전쟁이 나면서 본사 엔지니어들이 전부 철수해버렸고, 아르헨티나 기술자들이 일일이 추측해가면서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항공모함을 격침시키는 대박이 나지 않는 이상 전황 자체를 뒤집기에는 턱없이 적었다. 물론 영국군이 상륙한 5월 중순 이후부터는 항공모함을 격침시켰다고 해도 털렸을 것이다. 지상군은 장비도 부족하고 예비군보다 못한 수준이며, 아르헨티나 해군은 항구에 짱박혀 있었다. 아르헨티나 공군 및 해군 항공대는 전쟁 전 자국의 42식 구축함을 이용해 가상전을 벌여보았으나 50%정도만 생환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조금 어려움에 처했다고 그 자리에서 바로 해상전을 벌였으니 그 결과는 안 봐도 뻔한 것이었다. 이후 셰필드 격침 전과를 기록한 엑조세는 옛 [[소련]]의 [[스틱스 대함 미사일|스틱스]]나 [[중국]]의 [[스틱스 대함 미사일|실크웜]]을 능가하는 대함 공격 수단으로 각광을 받는다. 42형 구축함과 같은 기존의 방공함들은 스틱스처럼 수백 미터 고도를 아음속으로 날아오는 함대함 미사일이나 [[Kh-22 부랴|AS-4 키친]]처럼 고고도를 초음속으로 날아오는 대형 공대함 미사일에 대한 대응에 집중하여 저고도 방공능력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편이었는데, 이 약점을 초저고도로 돌진하는 엑조세가 정확히 찌른 것이다. 이 사건은 시스키밍 [[대함 미사일]]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어, '셰필드 쇼크' 혹은 '엑조세 쇼크'라 불리며 이후 군함 건조에서 저고도 방공 능력과 [[CIWS]]를 위시한 최후 점방어능력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다. [[파일:external/www.naval-history.net/FpAaCanaEtendard2.jpg]] ▲ 쉬페르 에탕다르 [[파일:external/news.bbc.co.uk/_1414411_sheff300.jpg|width=450]] ▲ 피격당한 셰필드 참고로 침몰할 때 승조원들이 [[라이프 오브 브라이언]]에서 나온 곡 [[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Life]]를 불렀다고 하는데 가사의 뜻을 보면 참 묘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